요긴하게 쓸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모이다 보면 부피가 작지 않아 냉동실을 금방 채우게 됩니죠. 냉동실 문 열다가 이 아이스팩에 발등 찍혀 보신 분 적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막상 버리자고 하니 어떻게 버려야 할지 난감합니다. 겉봉에는 '비닐류'라고 적혀 있어서 분리수거하려고 보니 내용물이 문제. 딱 봐도 물은 아닌 거 같고, 일반 쓰레기로 버리자니 종량제 봉투가 아깝고.. 이 아이스팩, 정체가 무엇일까요?
물 99%에 마법의 플라스틱 가루 한 스푼
궁금해서 직접 아이스팩을 뜯어봤습니다. (나중에 말씀드리겠지만,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딱히 해로운 물질은 아니라고 합니다) 비닐 안에 있었을 땐 꾸덕한 젤리 같았는데, 꺼내놓고 보니 보슬보슬한 알갱이 같다고 할까요. 만져보면 축축하지만, 피부를 적시진 않는 묘한 질감입니다.
아이스팩에 들어 있던 내용물, 만져보니 축축하면서도 보슬보슬한 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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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의 정체는 고흡수성 폴리머, Super Absorbent Polymer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고흡수성 합성수지, 즉 석유에서 정제된 플라스틱 물질입니다.
괜히 Super라는 이름이 붙은 게 아닙니다. 물을 엄청나게 빨아들이죠. 특유의 분자 구조 안에 자기 무게의 최대 500배 많은 수분을 가둬둘 수 있다고 합니다. 이 특성 덕에 걸레를 짜듯 강한 압력을 가해도 물이 잘 새어나오지 않아 기저귀나 생리대의 소재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미세한 가루 형태였던 이 물질이 물을 만나면 아이스팩 내용물이 됩니다. 아이스팩에 들어 있는 건 대부분 물인데요. 500g 크기 아이스팩에 들어가는 SAP는 4g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제조사에 따라 다르지만 99%가 물인 셈입니다.
가루 형태의 고흡수성 폴리머(SAP), 물을 만나면 부풀어 오른다(출처 : LG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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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물질을 이용해 아이스팩을 만드는 이유는 뭘까요? 크게 두 가진데요, 우선 탁월한 냉장 효과 때문입니다. 한양규 한양대 화학과 교수는 "SAP가 물 분자를 꽉 쥐고 있어서 증발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이라면서 "일반 얼음이 상온에서 하루 만에 녹는다면, 물과 섞어 젤리 형태로 만든 SAP는 이보다 5배에서 7배 정도 오래간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물로만 채웠을 때와는 달리 포장지가 잘 터지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아이스팩 제조업체 관계자는 "실험을 해보면 물만 넣었을 때와 달리 잘 터지지 않고 터지더라도 내용물 훼손도 적은 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보슬보슬 묘한 질감…몸에 해롭진 않을까?
그렇다면 이 물질, 우리 몸에 해롭지는 않을까요?
이 녀석의 기본적인 속성은 플라스틱입니다. 최근 환경에 대한 우려 때문에 오해도 있지만, 플라스틱을 만진다고 해서 당장 몸에 해로운 영향을 주진 않습니다. (플라스틱 자체로는 깨끗합니다. 너무 썩지 않아서 문제인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대부분이 플라스틱이지만, 큰 문제는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여느 플라스틱 물질이 그렇듯 손에 닿는다고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며 "물 외에 다른 성분이 들어 있지 않다면 아이스팩을 당장 뜯어서 갖고 놀아도 무방할 정도"라고 설명했습니다.
문구점이나 온라인쇼핑몰에서 구할 수 있는 어린이용 완구. 물과 만나면 하단 우측 사진처럼 팽창한다. (출처 : 한국소비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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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절대로 삼키면 안 됩니다. 수년 전 SAP를 활용한 어린이용 완구가 문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수분을 흡수해 팽창하는 특성을 이용해 '개구리 알'이란 이름으로 학교 앞 문방구에서 유행했었죠. 2014년 당시 한국소비자원이 낸 보고서가 있는데, SAP 완구를 삼킬 경우 체내에서 팽창해 심한 고통, 구역질, 탈수증 등으로 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겉면엔 비닐, 내용물은 플라스틱…어떻게 버릴까
자 그러면 이 아이스팩, 어떻게 버리면 될까요?
분명 분리수거가 가능한 비닐이라고 돼 있는데, 내용물은 고흡수성 폴리머로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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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 내용물은 종량제 봉투에, 포장재는 분리수거해서 버린다'입니다. 내용물을 물에 흘려보내도 된다는 잘못된 정보가 돌기도 했지만, 그렇게 하면 젤리처럼 변하는 이 녀석의 특성 때문에 하수구가 막힐 수도 있다고 합니다. 설령 막히지 않더라도 바다로 흘러가게 되면 해양 생태계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미세플라스틱이 될 수 있습니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예전에 물만 넣어 아이스팩을 만들던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생긴 잘못된 정보"라며 "내용물은 반드시 종량제 봉투에 버리고 속을 깨끗이 비운 뒤 포장재만 따로 분리수거해 버릴 수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뜯어보면 아시겠지만, 물로 헹궈내지 않고 속을 깨끗이 비운다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통째로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는 것이 나아 보입니다.
포장재를 벗긴 채 밖에 놔두면 어떻게 될까요? 바닥을 물로 적시며 아주 천천히 마릅니다.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가루 형태의 SAP만 남습니다. 이런 특성을 살려 화분에 활용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집을 오래 비워 식물에 물을 주기 곤란할 경우 이렇게 하면 유용하다고도 합니다.
화분에 물을 주는 용도로 사용되는 아이스팩 내용물(출처: 털팽이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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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2억 개 이상 사용"…환경 영향은?
그런데 이러한 아이스팩을 사용하는 것이 환경에 부담을 주진 않을까요? 아이스팩, 우리 주변에 얼만큼이나 쓰이고 있는 걸까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아이스팩이 우리나라에서 아주 많이 쓰이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한 홈쇼핑 업체의 경우 지난 한 해에만 250만 개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만 적어도 연간 2억 개 이상의 아이스팩이 사용됐을 거라는 아이스팩 생산업체 관계자의 주장도 있었습니다. 1인 가구 증가, 간편식 수요 등 택배 시장 성장세에 따라 아이스팩 수요는 늘고 있습니다.
널리 쓰이지만, 일반 가정에서 그냥 쌓아놓기엔 부담스럽고 환경에도 그리 좋지 않으니 되도록 적게 쓰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래서인지 정부나 업계에서도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환경부는 지난 1월 포장재 절감대책을 발표하면서 택배 등에 자주 쓰이는 아이스팩의 내용물을 물로 채워진 친환경적인 물질로 바꾸도록 유도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유통업계에서도 아이스팩을 다른 물질로 대체하거나 기존 아이스팩의 재활용률을 높이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홈쇼핑은 고객이 신청할 경우 아이스팩을 방문 수거해 재활용하고, 고객에게는 아이스팩 20개당, 5천 포인트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롯데홈쇼핑은 물로만 채운 아이스팩을 사용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홈쇼핑 업체 직원이 고객의 집으로 찾아가 아이스팩을 수거해가는 모습. (출처 : 현대홈쇼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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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치 곤란한 아이스팩, 절대 하수구에 버리지 말고 비닐 통째로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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