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의 입장에 선 드라마…"계약직 천만 시대, '미생'은 모두의 이야기"
tvN 드라마 '미생'의 장면들. (방송 캡처)
땅콩 한 봉지로 누군가는 비행기에서 추방 당했다. 아파트 주민의 폭언에 누군가는 자살을 했다. '갑의 횡포'가 끊이지 않는 사회. 그래서 '을'에게 '미생'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두 '미생'이다".
tvN 드라마 '미생' 초반에 오상식 과장이 인턴사원 장그래에게 건넨 한 마디다. 인간은 누구나 '완생'을 향해 가는 존재지만 그 본질을 잊은 '갑'은 어디에나 있다.
'미생'에도 '갑'은 존재한다. 어느 날 갑자기 바이어가 돼 나타난 친구, 육아를 죄로 만들고 계약직의 이름을 기획안에서 지우는 회사, 신입사원에게 기획안을 포기하라 강요하는 상사. 이들의 '갑질'은 사회 초년생들뿐 아니라, 오 과장, 선 차장 등 잔뼈가 굵은 '을'까지 고달프게 한다.
그렇다고 '미생'이 이 같은 '갑의 횡포'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미생'은 단지 일련의 에피소드를 통해 '을'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성공한 드라마 중 '미생'처럼 '을'의 입장을 대변하는 드라마가 없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판타지'를 가져야 하는 콘텐츠로 여겨져왔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겪는 일상을 담는 시도 자체가 활발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나 '미생'은 천편일률적인 직장인들의 로맨스 대신 대한민국 모든 직장인들이 겪는 애환에 집중했다.
집필을 맡은 정윤정 작가는 직장인 캐릭터를 구현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정 작가는 보조 작가들을 직접 회사에 보내 1달 간 출근일지를 쓰게 했다.
연출의 김원식 PD의 정서도 이와 궤를 같이 했다. 그는 1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미생'의 슬로건인 '그래도 살만한 인생'에 대해 불편함을 표시했다. 그는 자신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 '그래도 살아야 하는 인생'이지 '살만한 인생'은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이런 제작진의 노력과 생각 덕분에 '미생'은 어느 드라마보다 '을'의 현실을 실감나게 그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을'의 공감과 연민을 이끌어내며 그들을 위로했다.
시민단체 참여연대 관계자는 '갑의 횡포'가 만연한 시대에서 '미생'의 힘이 '공감'에 있다고 봤다. 참여연대는 이번 '땅콩회항' 사건에서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을 처음 고발한 단체다.
김재혁 간사는 CBS노컷뉴스에 "노동계 통계로는 계약직이 천만에 가깝다고 한다. '미생'을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갑을 관계의 문제는 단순히 계약관계의 문제에만 있지 않다"면서 "작은 권력 차이에도 큰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폭력이 발생한다. '땅콩회항' 사건 역시 기업의 오너라는 이유로 체제를 무너뜨린 사례다"라고 설명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미생' 신드롬에 영향을 미친 요소로 불안한 현실을 꼽았다.
그는 "서민들이 현실에서 느끼고 있는 불안이 너무 크기 때문에 드라마에도 반영될 수밖에 없다. 여전히 신데렐라 스토리의 드라마는 있지만 현실의 수위가 그것만 보기에는 갈등을 느끼게 되는 지점까지 왔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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